남의 실패를 나의 성공으로 여기는 죄
말씀요약 (에스겔26:1~21) 두로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을 보고 슬퍼하기보다, 경쟁 도시가 사라졌다며 기뻐하고 자신의 번영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만과 조롱을 악하게 여기시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비롯한 여러 민족을 사용하여 두로를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두로의 성벽과 망대는 무너지고, 성문과 거리는 파괴되며, 재물과 무역품은 약탈당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집과 견고한 석상은 무너지고, 노랫소리와 수금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자랑하던 두로는 결국 맨바위처럼 되어 그물 말리는 곳이 되고, 다시는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심판을 통해 열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된 주권자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심판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죄를 미워하시지만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담긴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훈육하셨습니다.
그런데 두로는 하나님의 징계로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을 보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몰락을 기뻐하고 조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결코 지나치지 않으셨고, 에스겔을 통해 두로를 향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부모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꾸짖습니다. 자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바른 길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이 자녀를 조롱하거나 그 고통을 즐긴다면 부모의 마음은 더욱 아플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도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버리시는 심판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랑의 징계였습니다. 반면 두로를 향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을 비웃고 자신의 교만을 의지했던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가운데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반복되는 "네"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네 성", "네 재물", "네 무역", "네 집"을 하나하나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 역시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한 가지를 더 돌아봅니다. 나는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나 민족, 혹은 국가를 보며 무심코 조롱하거나 쉽게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하면서 내 생각과 기준으로 누군가를 정죄하고 심판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살펴보게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나의 역할은 심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긍휼과 사랑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겸손히 회개하며, 고난당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조롱이 아니라 위로와 긍휼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